잡다한디지털~

응답하라 IT 역사

푸른도시 2013. 12. 24. 14:25

최근 응답하라 시리즈가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데, 뭐 그냥 그런거 보다보니 문득 오래전 생각이 들어서 한번 정리를...

 

얼마 안되는 기간이라면 얼마 안되는 기간이지만 그래도 IT의 격량에 살아왔던자로서 뭔가 느꼈던 기기나 사건들을 한번 정리를 해본다.

 

1. PC의 출현

70년대 초등생의 목적은 딱 두가지다. 재미있는 만화책을 구하거나 멋진 장난감을 구하거나. 그 이외에는 오로지 오늘을 어떻게 멋진 즐거운 하루로 보내느냐가 최대의 관건이다. 그러던 어느날 만화책을 한권 보게 된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으나 아마도 후지쯔의 FM-8인거 같기도 한데, 하여간 소형 PC의 사용법에 관련된 책자였다. 당시에는 쏟아지는 장비들이 제각각의 OS와 구동 유틸 언어를 가지고 있었기에 그러했던것 같은데, 그걸 왜 번역해서 한국에 팔았는지는 모르겠다. 여튼 그때부터 그 책은 닳을때까지 몇번이나 보게 되었고 여기에 필을 받은 본인으로서는 어떻게든 PC를 구해야겠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당시의 돈에 대한 개념이 전무한 당사자로서는 PC가 일반 월급쟁이의 아들로서는 구입하기 힘든물건이라는걸 이해하지 못하였고 부모님께 칭얼대는 아이로만 보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길은 다른곳에서 열렸으니. 당시 부산에서 다섯손가락에 들어가는 섬유업체를 운영하시는 이모부님께서 월급등의 전산화를 위하여 미쿡에서 장비를 들여올때 한대 더 사셔서 조카에게 무상증여를 해주신것이다! 그것은 바로!

애플 ][였다.

 

 

가히 혁명이었다. 초록색 모니터속에서 움직이는 그 현란함이란... 어릴적 나이에도 불구하고 밤을 새기시작했고, 급기야는 부모님이 금지령을 내리실 정도로 빠져들었었다. 아마도 이때가 IT와 내 인연의 시작이었던가 보다.

 

덧붙이자면, 만화로만 쌓은 지식이다보니 테이프 레코더만 쓸줄 알았지, 같이 보내주신 시커먼 장비가 플로피 드라이브라는건 1년뒤에 알았다.

 

 

2. 노트북의 등장

어릴적의 그렇게 좋아하던 PC지만 결국 공부의 압박과 학생의 본연의 신분은 어떻게 철폐할 수 없는 시절이었기에 애플은 봉인 당하고 책상머리에 코를 박게 된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대입.. 그래도 할건 다 한다고 PC통신도 이것 저것 해가면서 스브적 발은 들여 놓은 상황이었는데.. 외국의 서적을 뒤지다 하나를 발견한다. 이것 또한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으나 대충 더듬어 보면 도시바의 다이나북이었던걸로 사료된다. 

꽂힌거다. 오오오! 모니터와 모든게 하나이면서 이동이 가능한 PC라니 가히 혁명이 아닌가? 물론 이때도 정확한 가격을 알 수 없는 상황인지라 뭣도 모르고 사야겠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부모님이 동남아를 여행하시면서 선물로 필요한게 있냐고 하실때 또 덜컥 노트북을 주문한다. 다행히 어디서 파는지를 몰라서 사오지는 못하셨고 기회를 얻지 못한 나는 호시탐탐 노트북을 갈구하게 된다.

 

뭐, 덕분에 노트북 개발자로... 그것도 노트북의 최고봉이라는 IBM ThinkPad 개발자로 미국까지 가서 개발회의를 하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개발에 처음 참여할던 ThinkPad 365

 

아, 그래도 처음 개발에 참여했던 ThinkPad 365 사진을 다시 보니 감개 무량하다. 그래봐야 한글화 OS밖에 안했지만. ㅋㅋ

 

90년도 중반에 전시용으로 신제품을 들고 다닐때는 어깨가 뽀개지는줄 알았다. 무지 무거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제품명에 Air가 들어간다. 욜나 가볍다. IT의 변화란 진정 무서운것이다. 지금은 대부분 타블렛으로 옮겨간거라고 보이지만 그래도 노트북은 노트북 나름대로의 역사가 있는것이다.

무게 하니깐 생각난게, 천만원이 넘는 가격에 획기적인 디자인으로 당시에 최고로 가지고 싶던 노트북은 당연 Thinkpad 701C였을것이다.

이게 버터플라이라는 개발명으로 널리 알려졌었는데, 화면을 열면 키보드가 좌우로 촤악 펼쳐진다. 점점 구형이 되어갔으나 사람들은 악착같이 쓰기도 했던 노트북이었다. 나도 말년에 장비를 인도받아서 쓰긴했으나 너무 느려서 그닥 오래 못썼었던 기억이 난다.

휴대하기 쉬운 장비로는 개인적으로 구입한 노트북이었지만 정말 마음에 들었었던 노트북이 도시바 시리즈의 리브레토 30이었다.

당시 유행하던 전자수첩의 크기에 윈도우가 작동하던 시스템이었다. 조금 두껍기는 했지만 그래도 자켓 주머니에 들어간다는건 획기적이었다. 솔직히 지금와서 실토하지만 국내에 통관에 들어올때 전자 수첩이냐고 물어보길래 그렇다고 해서 세금을 떼먹은적이 있다.

당시에 '생활의 달인'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아마도 나왔을것이다. 개발을 진행하다보면 OS의 시리얼번호나 Office의 시리얼번호등등을 입력해서 실행 테스트를 해야 한다. 솔직히 시리얼 번호라는게 옮겨적기도 힘든 형태로 되어 있는게 태반이었는데.. 그걸 다 외웠던거다. 그때 외우고 있었던게..

Windog 95, 98, 2000, 2000 Server, Office... 뭐 그 외에도 몇개를 외우고 댕겼다. 맨날 같은 번호만 입력을 수십번 하다보니 외워진거다. 때문에 외국에서도 테스트를 할때 나만 있으면 된다고 동료들이 날 끼고 댕기던게 생각이 난다.

 

 

3. 뉴튼을 보다

뉴튼을 처음 발견한것은 96년 싱가폴을 교육때문에 방문했을때였다.

사실살 3주 동안 빡센 교육일정이라 시간은 잘 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외국인데 시간내서 구경한번 안나간다는건 거시기 하다.

싱가폴에서 유명한 전자상가는 심림 스퀘어 상가다. 마치 절정기의 용산같은 느낌이 가한곳이다. 몇개 득템도 많이 하긴했다. 국내에 출시전이었던 윙코맨더 신작도 구했고 한국에서 상영이 끝난지 얼마 안된 이연걸 주연의 정무문 비디오시디 정품도 구했고. ㅋㅋ

 

그렇게 상가에 흘러다니는 도중. 헉! 숨을 멈출수 밖에 없었다. 잡지나 사진을 통해서만 구경할수 있었던 애플 뉴튼 메세지패드 120!! 오오... 손바닥 PC의 시대가 오는것인가? 지금처럼 동영상이 돌아가는거도 아니고 게임이 휭휭 돌아가는거도 아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다이어리의 디지털화 정도?

 

 

 

하지만 뭔가 새로운 시대를 시작할 수있는 아이템이라는 생각에 최초로 외국에서 카드 결재를 저지르고 만다. 물론 이것이 나의 PDA 라이프의 시작이었으니 기념비적인 제품이긴하다.

그 뒤를 잇는게 Palm을 시작해서, Sony의 Clie 시리즈, HP, 등등등 여러가지를 섭렵하게 된다. 결국 마지막에 손에 쥐었던건 palm의 T5를 쓰다가 Treo로 넘어가게 된다.

 

4. 네비게이션 혁명

운전은 처음 시작한건 2000년도였나? 원래 내근이 많은 자리였으나 외근직으로 바뀌고, 업무차 주로 가는곳이 전철로 갈수없는곳이다 보니 도저히 안되어서 면허를 늦게사 땃다.

그다음이 문제다. 타고난 길치다 보니 지도를 펴놔도 그 지도의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니 출발점을 찾질 못하니 소용이 없는거다.

때문에 고민을 하던 와중에.. 네비게이션이 상용화가 되어 길안내를 해준다는거다. 사진도 찾기 힘들어서 찾다가 걍 포기. 당시 제일 대중화가 많이된 iPaq PDA에 두툼하니 GPS 장착기를 붙여서 벽돌로 만들고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면 짜잔~

차량용 네비게이션이 된다.

물론, 처음 가동시 위성 잡는데 한 2~30여분이 걸릴때도 있고, 날씨 흐리면 안잡히고.. 제대로 업데이트가 안되어서 논밭 한가운데에 세워줄때도 있고.. 달리다보면 아파트 단지위나 바다위를 날라다닐때도 있지만..

그래도 길치인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준것은 사실이었다.

 

뭐... 오늘은 이정도로 정리해 볼까? 살아오면서 내게 충격을 준 IT 물건들은 대충 이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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