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말할 수 있다 - 한누리 소프트

일상다반사 2022. 4. 10. 21:01 Posted by 푸른도시


91년도인가, 92년도인가 그때 어린 패기로 만든 사무실이었다. (찾아낸 사진 보고 알았다. 92년이었다)
사실상 사무실이라기 보담은 사업자 등록증도 없이 그냥 이름만 내다건 스터디 그룹같은거였다.
당시 PC 통신으로 알게된 친구들 5명이서 사업을 해보자는 막연한 생각으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모여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아무래도 모일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보증금 없이 월세만 내는 허름한 건물의 조그만 방하나를 빌렸고, 우리는 방문앞에 '한누리소프트'란 이름을 붙였다.

PC나 관련 책자 같은건 각자 쓰던걸 가져오면 되지만 책상이 없었고.. 그래서 근처 자재상을 가서 합판을 하나 사왔다. 다리 받침은 근처 재활용품에 버려진 다리를 가져오고, 마침 다용도 칼을 가지고 있던 내가 칼에 포함된 톱을 이용해서 합판을 반으로 힘들게 갈랐다. 그걸 버려진 다리위에 어찌 어찌 고정을 하고 길게 책상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이리저리 PC와 도구들을 정리하고 우리는 우리만의 성을 완성했다는 생각에 그날 자축 파티를 열었었다.

이후 출근 한답시고 매일마다 들러서 이것저것 구상만 하다가, 지인을 통해서 한 비디오 대여점의 관리 프로그램 수주를 받게 된다. 당시에 비디오 대여점 관리 프로그램은 전부 dBase III를 응용한 프로그램이 전부였는데, 우리는 좀더 나은 환경과 속도를 가진 Clipper를 활용해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당시 하드웨어 담당자라 불리던 내가 이것 저것 부품을 수급해서 PC를 두대 조립하고 이 프로그램으로 첫개시를 한다.
한데, 이게 생각보다 괜찮은 속도와 성능을 자랑했다.
때문에 이 프로그램으로 뭔가를 더 해볼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좀더 개량하면 보다 복잡하고 규모가 큰 부분에 적용도 가능하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이전부터 알던 선배(?)라는 분이 찾아왔다. 나는 잘 모르지만 다른 친구들과는 친분이 있었고, 이전에도 같이 일한적이 있던 분이라는 소개를 받았다. 그 선배라는 사람이 자신이 투자할테니 좀더 나은 사무실로 옮기자고 그랬다. 사실 5명이 있기에는 좀 좁은 방이기도 했다.
나는 잘 모르는 사람이지만 다른 동료들은 잘안다고 하니 그런가보다 하고 좀더 번듯한 사무실로 이전을 하게 된다. 투자가 되니 합판으로 만든 책상이 아닌 중고지만 번듯한 책상을 길게 4개를 놓고, 역시 중고인 소파까지 입구에 비치했다.
물론 비디오 대여점 프로그램이 자주 팔리는것 아니지만 3군데였던가? 그렇게 판매를 하고 납품을 하고 온날은 모두 신나서 축배를 들곤했다. 뭐 축배라고 해봐야 짬뽕 국물 하나에 소주 나눠먹는거였지만.
그래도 행복했었다. 아직 사회에 대해서 몰랐지만 그래도 우리끼리 뭔가를 한다는 우쭐함도 있었고 나름 조금씩이지만 뭔가 되는것처럼 보였다.

그러던 어느날 서울에서 큰 규모의 이야기가 내려온다.
어찌 어찌 연결이 되었는데 우리가 만든 프로그램을 알아보고 자신의 회사에 전체 관리 시스템으로 젹용하고 싶으니 1억에 제작을 해달라는거였다. 기뻤다.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도 들고 이로서 우리도 정식으로 나아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계약을 해야 하니 이제 사업자 등록증도 만들고 할일이 태산이었다.

이때 처음 투자한 선배가 등장한다. 사업자 등록증은 자신의 이름으로 하고, 1억을 받으면 투자한 자신이 5천을 가지고 우리 5명이 1천씩 나눠 가지는걸로 하자는거다. 같은 동료가 반발을 했다. 투자해준건 고맙지만 그래도 일은 우리가 하는데 이건 좀 아니다라는거다. 7:3으로 양보할테니 3으로 만족하시라고 했다. 돈 문제가 꼬이면 항상 그렇다. 결국 목소리가 높아지고 이래 저래 헤어진다.
며칠동안 협의를 했으나 감정은 더욱 격해지고 결국 그냥 때려치우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자 그러고 사무실을 나왔다.

다음날 아침 사무실을 갔더니 자물쇠가 바껴져 있었다. 선배라는 사람이 자신이 대여한 사무실이니 자물쇠를 바꿔단거다. 리더격인 친구가 와서 보고는 격노하고, 근처 열쇠집 사장님을 불러서 문을 따게 했다. 뭐, 평소에도 우리가 인사하던 사이니 그냥 고장이 났나보다 하고선 열쇠를 열어 주셨다.
다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이제는 여기선 안되겠다는데에 합의를 했다. 결국 이제 끝난거니 일단은 돌아가자는게 결론이었다. 결국 자신들이 가져다논 책자나 PC를 꺼내서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이후 집으로 돌아와 다시 물건을 정리하고 잠이 들었는데, 새벽 2시경 전화가 왔다. 절도죄로 고소가 되었다는거다. 이게 뭔소린가 했더니 자신의 사무실이 털렸다고 그 선배라는 사람이 경찰에 신고를 했다는거다.
부랴부랴 아버지 친구분 변호사 분께 새벽에 연락을 하고 사정을 설명하니 절도죄가 성립이 가능하다는거다. 왜냐면 우리가 가져온 각자의 PC는 우리거라는 증명이 없다는거다. 당시엔 이것 저것 부품을 모아서 조립한 조립 PC가 대세인데, 이 부품들을 내가 샀다는 증명이 하나도 없는거다. 결국 그 선배 명의의 해당 부동산에서 열쇠를 열고 물건들을 꺼내온것이니 결국 절도죄가 된다는거다.

새벽에 다시 물건들을 낑낑거리면서 가져다 놓았다. 적어도 절도죄가 아니라는걸 경찰에게 증명을 해야했고 이를 이야기 하기 위해선 일단 물건들이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는거다.
물건들을 가져다 놓고 담배를 한대 피울때쯤 그 선배라는 사람이 형사와 함께 아침에 도착을 했다. 친분이 있던 두 친구들에게는 뺨을 한대씩 치는걸로 용서 할테니 절도죄는 없었던걸로 하자는걸로 어찌 어찌 마무리를 했다.
이후에 들었던 이야기지만 그 같이온 형사도 결국 그 선배와 친분이 있는 관계로 단순히 협박용으로 진행했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지나간 이야기지만 문득 생각이 나서 정리를 해봤다.
뭐, 나름 젊은날의 패기라고나? 그래도 그때 잘 되었으면 이후에도 열심히 해서 번듯한 회사가 되었을지도?

사실 서울을 올라가게 된 계기도 부모님과 싸운거도 있지만 이게 망하면서 인제 머 해볼게 없구나하고 올라간것도 없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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