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추억

일상다반사 2021. 11. 1. 09:51 Posted by 푸른도시

어릴적 어머니와 싸우고 가출하다시피 올라간 서울이었다.

이것 저것 아르바이트도 하고 어쩌다 취직도 하곤했었는데, 우연히도 IBM의 SW 사업부에서 임시직에 일하게 되었다. 원래 SW 테스트나 이런저런거도 좋아했고, 더욱이나 당시 최애였던 OS/2를 하루종일 가지고 놀 수 있다는게 정말 즐거웠다.

이러저러 일을 하던 도중에 당시 IBM에 입사해서 PC 개발팀에 있던 친구가 부탁을 했다. 프로그램도 좀 알고, 그래픽도 좀 아는 내가 새로 발매될 제품의 애니메이션을 수정해주었으면 했다. 당시 업체에서는 3백만원 가까이 견적이 들어왔고, 나는 그냥 알바 형태라서 50만원에 하겠다고 계약했다. 사실 50만원도 안되는 일이었다. 애니메이션에서 날라다니는 알파벳을 한글로만 다시 그려주면 되는거였다.

약 2주를 일하고 아르바이트비를 받으러 갔더니 매니저께서 못주겠다고 하신다. 사실 작업을 위해서 하루는 여의도의 사무실에서 SW 테스트를 하고, 저녁마다 매일 용산에 있는 PC 사업부로 가서 같이 부대끼면서 그림 작업결과를 같이 돌려보면서 많이 친해진 상태였는데 못주신다니 처음에는 당황했다. 하지만 그 뒤에 바로 매니저가 주신건 입사지원서였다. 이미 본부장님한테도 사전 승인 받고 사인까지 받았단다. 본부장 이상급에서 사인을 하면 서류심사는 무조건 통과란다. 2주동안 같이 있으면서 너무 마음에 들어서 알바비는 못주겠고, 그냥 데리고 있고 싶다고 하셨다. 그렇게 덜컥 IBM에 입사를 하게 된다. (물론 그 알바비는 나중에 매니저를 계속 뜯어먹는 핑계가 되었다)

이후 용산에 위치한 PC사업부 사무실로 정식 입사한 뒤, 1년여를 보냈다. 어느날 사업부를 전부 여의도에 있는 본사로 통합한다고 여기저기 있는 사업부들이 모두 여의도로 이사를 하여 자리를 잡고, 우리도 여의도 생활이 시작되었다.

처음에 소개한 친구와 함께, 새로 들어온 신입이 우리 팀의 전부였다. 하지만 구석의 조그마한 창고를 개조한 우리 팀방은 너무나도 맘에 들었었다. 용산 시절에는 따로 자리가 없고 거의 창고에서 테스트 장비와 같이 있던게 우리들의 자리였으니 우리자리가 생겼다는게 나름 좋았었다.

셋이서 나란히 앉아서 일하면서 이것 저것 이야기도 많이 하고, 점심 뭐 먹을지 고민도 하고, 저녁에는 같이 술도 한잔하면서 지냈던 그때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그래도 재밌던 시절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꼰대가 갑자기 옛날 이야기를 꺼낸건, 말 그대로 요즘 회사원들이 일하면서 즐겁지가 않은게 안타까워서다. 자신이 하고 싶은일을 다하고 살수는 없지만, 그래도 자신이 지금 하는 일에서 즐거움을 느끼면 적어도 일하면서 힘든게 조금 줄어들지 않을까하는 생각.

세상이란게 뭔가 내 맘대로 되지도 않고, 내가 뜻한바를 모두 이룰수도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일에 있어서 하나 정도의 재미를 찾는다면 그래도 그나마 좀 편한 생활이 되지 않을까하는거다.

오늘도 나는 신나게 못 박으러 나간다. 즐거운 목수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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