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예능을 보다가 거기서 시스템 관리 하면서 노트북이 나왔다.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빨콩이 내장된 씽크패드였다. 그걸 보니 갑자기 내 노트북 편력이 생각났다. 88년도 였나? 도시바인지 NEC인지는 기억이 잘 안나지만 잡지를 읽던 도중에 새로운 제품이 나왔다는 소개를 봤다. 노트북이 넘넘 가지고 싶었다. 사실 PC는 있었지만 XT급도 겨우 구비하고 있으면서도 이동을 하면서 이용이 가능하다는 부분이 너무 마음에 와 닿았다. 동남아 여행을 가시는 부모님이 뭘 사다줄까 했을때 나는 가격 따위는 생각지도 않고 이걸 사달라고 사진을 오려서 드렸다. 다행(?)이게도 부모님은 전자상가 같은거 근처에는 안가셨었다. 만약 가셔서 가격을 물어보셨다면 귀국후 날 죽이려 하셨을것이다. 이후 나이가 들고 이것저것 하면서도 노트북에 대한 열망은 계속 커갔고... 서울에 가서 얼마 안되어서 노트북을 질러버렸다. 그것도 알바로 근근히 먹고 사는놈이 카드를 만들어서 그걸로 질러버린거다. 물론 그 카드는 빵꾸가 나고, 부산집에 독촉장이 날라가면서 부모님께 호출당한 나는 거의 재기 불능 정도로 야단을 맞았다. 그 뒤로는 내 분수에 맞게 살자는 생각으로 살았었다. 그러던차에 IBM에 입사를 하게 된다. 그리고 신입 사원에게 무조건 지급되는 휴대폰과 노트북. 커헉..... 노트북에 대한 열망도 열망이지만, 그 중에서도 갖고 싶은 장비 탑급에 속하는 Thinkpad 701을 지급받는다. 아아... 그 키보드의 미려함이란... 그뒤에 일본 출장을 다니면서 구입한 제품은, 좀더 작은 형태의 노트북이 갖고 싶어서 장만한 리브레토 시리즈였다. 처음 출시한 당시에는 전자수첩이라고 해도 믿을정도였다. 지금은 노트북이 1kg을 넘어가면 무겁다고들 한다. 그거 보면서 우와아... 이런다. 처음 Thinkpad 560 이란 제품이 나왔을때 2kg의 벽을 깼다고 난리였다. 그랴봐야 1.96kg 로 한 40그램 빠지는거였는데, 그거만으로도 난리였다. 당시 노트북은 대부분 3kg대에 거의 5kg에 육박하는것도있었다. 노트북 담당자로 살때 경주에서 전시회를 한적이있었다. 신제품들을 주욱 전시하고 협력 대리점에 소개하는 행사였다. 이때 전시장비를 전부 포장해서 보냈는데, 노트북은 분실 위험이 크다고 맡질 않는것이었다. 결국 전시할 4대를 가방 두개에 우겨넣었다. 그리고 내가 갈아입을옷이 든 가방을 등에 매고 양 어깨에 하나씩 약 10kg의 가방을 메고 경주를 향했다. 역에서 내려서 행사장을 갔는데, 잘못찾아갔다. 물어보니 좀 떨어진곳이 행사장이었는데, 지나는 택시도 없고해서 결국 걸어서 갔다. 무슨 군대서 완전 군장도 아니고 양복입고 먼 개고생이었는지, 지금 생각하문 아찔하다.
그냥 자료만 받는거래매? 그럼 머하러가? 요새 인터넷이 얼마나 좋은데 말이야. 아무리 큰 자료도 휘익하고 받어. 그냥 자료만 받는건데 머하러 가? 뱅기표는 머 꽁으로 걍 생겨? 다아 국민의 세금이야. 낭비좀 고만해. 놀러가냐? 걍 자료만 받고, 안내 가이드에 따라서 휘이 둘러보고... 그러고 올거 아녀? 걍 가지마. 자료만 볼거문 걍 여기서 봐. 아무리 쑈한데도 돈 낭비 좀 고마하자. 좀.
식당에서 밥먹고 있는데 무슨 토론 프로그램 같은데서 요즘 화제인 JMS 같은 사이비 종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때 옆 자리의 손님들이 하는 말, 대학생들이 많이 포섭된다는데 왜 하필 대학생들일까? 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속으로 생각하길...
'잘 속으니까'
대학생이란 존재는 명박이 말을 빌려서 나도 해봐서 알지만 희안한 존재다. 외형은 어른이지만 속은 아이이고, 하지만 그럭저럭 용돈이나 알바의 힘을 빌어 어느정도 소비도 갖췄다.
한마디로 말해 속여먹기 따악 좋은 상황인거다.
모두들 대학생이 되면 뭔가 된듯하고 그럴것이다. 나도 그랬으니. 이전의 고등학교에서 대입을 위해서 아무것도 못하고 하고 싶은건 생각도 못하던걸 벗어나 자유가 생기기도 했고, 이제 나도 어른이다라는 우쭐함에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을 때다.
고등학교 때는 공부하는 놈이 뭔 돈이 필요하냐면서 돈도 어느정도 먹고 살 수 있을만큼의 용돈에서 술도 한잔 걸칠 수 있는 풍족한(?) 여유가 생긴다. 게다가 알바까지 뛰면 인제 어느정도 한자리 하는듯한 느낌과 집에서도 약간 큰소리 칠 수 있다.
이런 우쭐한 상태? 남에게 속기 따악 좋은 시기다. 아직 머리가 여물지도 않았으면서 이제는 내가 어른이니 내가 결정할수 있다고 큰소리 치면서 일을 벌리고 하는 나이다. 그래서 잘 속는다. 그래서 사이비 종교에서 우쭈쭈 해주고 말만 잘하면 홀라당 넘어가는거다.
힘든 시기이기도 하기 때문에 옆에서 해주는 위로는 너무나 달콤하기에 거기에 넘어가는거다.
나 또한 그 시기에 일도 많이 저질렀었다. 내가 나에 대한 자만심을 버리고 어른들과 상의도 하고 그랬다면 그런 실수들은 미리 방지했을지도 모른다. 사회생활이라는곳에 처음 발을 내딛은거다. 걸음걸이를 배우고자 의견을 묻는건 당연한거다. 혼자서 모든걸 해결하려고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앞장서서 가는 사람이 30%가 잘한다고 하지만 60%가 잘못한다고 이야기를 한다면 이는 뭔가 잘못된 부분이 있다는거다.
모든 사람을 100% 만족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자신을 지지하는 30%가 있으니 나머지는 무시해도 된다는거는 안된다. 잘못한다는 사람들이 60%가 넘는다는 이건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는거다.
그러나 니들이 짖던말던 나는 나만의 길을 가련다하다간 언제 무슨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거고....
하아... 이러고 4년이나 더 살라고?
관광지로 유명하던 아이티는 대통령이 암살을 당한뒤로 무정부 상태가 되었다 한다. 거기선 갱단들이 서로 반목을 하면서 서로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전쟁만 일삼고 있단다. 결국 시민들은 핍박을 못이겨 난민이 되거나 타국으로 떠나가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지난번에 결국 일이 터졌다. 참다못한 시민들이 갱단을 잡아서 화형을 시키는 일이 발생했다. 참다 참다 결국 폭발한 거였다. 이제는 경찰도 믿을 수 없고, 정부도 믿을 수 없으니 내 몸은 내가 지키겠다고 사람들이 일어선거다.
물론 이건 극단적 경우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참다 참다 나서면 얼마나 무서운지를 가르키는거다.
유튜브에 추억의 이야기를 하는 채널이 있어서 봤더니 나름 잘 설명하면서 재밌게 구성을 해서 종종 보게 된다.
어느날인가 문득 그룹 '아하'에 대해서 설명을 하기에 주욱봤는데...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발매한 앨범들에 대해서 소개를 할때 나오는 노래를 전부 흥얼거리고 있었다.
난 누군가의 음악이 마음에 들면 유행하는 그 한곡만 듣질 않았다. 그 사람이 마음에 들면 그 사람의 음반을 사서 전곡을 다 들었었다. 테이프가 닳도록 한동안은 그 음반만 들었던거다. 소개하는 노래들을 주욱 듣다보니 내가 아하의 음반을 4집까지 샀었던것 같다.
돈이 생기면 음반만 사던 시절이 있었던거다. 하나 둘씩 모아서 주욱 늘어 놓았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 음반은 공부 안한다고 전부 내다버린 울어머니덕에 존재하질 않지만 말이다. ㅋㅋ
당시에도 길보드 차트니 해서 유명한 곡만 모은 베스트 음반을 구할 수 있었지만, 성질이 지랄맞은 탓에 늘 발매되는 음반을 구입했었다. 때문에 락 발라드가 맘에 들어서 구입한 음반에 그 한곡을 제외하고는 시끄러운 락이 잔뜩 든 음반도 있었고, 처음에 마음에 들어한곡 이외에 다른곡들이 더 마음에 든적도 있었다.
좀더 올라가면 중학교때 American Top 40란 방송이 AFKN이라고 미군 채널에서 한적이 있다. 미국의 유명 방송을 녹음해서 틀어주는거였는데, 이게 저녁 11시인가, 12시인가에 방송이 되었다. 눈을 부릅뜨고 이불속에서 녹음을 해가면서 들었었다. 유명한 노래는 여기서 대부분 들었을 거다. 때문에 학교에서는 팝송하면 나한테 물어보는 아이들도 많았고, 추천 해달라고 하는 경우도 많았다. 더욱이나 내가 좋아하는 음반은 대부분 소지하고 있어서 아이들이 나에게 베스트 음반을 제작해달라는 경우도 많았다.
당시 집의 시설은 음악을 좋아하시는(?) 울 아버지 덕분에 마란츠 턴테이블과 진공관 앰프가 있었으니 나름 녹음 시설은 좋은편이었다. 그래서 한곡씩 넣어서 베스트 음반을 제작해서 아이들에게 팔곤 했다.
당시 테이프는 일반 테이프와 좀더 음향이 좋은 크롬 테이프, 메탈 테이프. 이렇게 3가지가 있었다. 재생을 반복해도 열화가 덜되는 테이프였다. 하지만 크롬 테이프나 메탈 테이프는 웬만한 일반 테이프의 몇배나 되는 가격이었지만 간혹 친구들중에는 그 비싼 테이프에 녹음을 부탁하기도 했었다.
앞에서 소개한 복고맨 영상들을 보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음반이 꽤나 많았었다. 나름 클래식에 조애가 깊은건 아니었지만 클래식도 좋아하던 편이어서 클래식 음반도 꽤나 있었다.
내가 음악을 좋아한건 아버지가 음악을 좋아하셔서 시스템을 갖춘것도 있었지만 누나들의 영향도 컸다. 누나들도 음반을 간혹 구입을 했었는데, 오히려 그 음반들을 내가 더 많이 들었던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 송골매의 음반중에 '동그라미'란 노래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공책 뒷장에 가사를 써 다녔던적이 있다. 지금처럼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는 가사가 아니라 재생과 정지를 반복하면서 한소절씩 손으로 쓴거였다.
지금은 손쉽게 인터넷이나 멜론등에서 음악가를 검색하면 쉽게 음반을 구했지만 당시에는 한국에서 발매가 되지 못하던 음반도 있었고, 이걸 소위 '빽판'이라고 불법 복제된 레코드를 구해서 듣곤 했다. 이것도 쉽게 구하지는 못했지만. 흑백으로 복사된 포장지에 들어 있던 빽판이 생각이 난다.
나중에 종종 가던 레코드 가게는 단골이 되어서 사장님이랑 친하게 지내기도 했다. 당시 나는 약간 마이너하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음악을 구하려고 노력을 했는데, 내가 사는 음반이 당시에는 유명하지 않았지만 나중에 뜨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 그래서 사장님이 가끔은 어느게 좋으냐고 물어보는 경우도 생겼었다. 내가 찍은 음반중에 유명해진건 조지윈스턴 시리즈와 여행스케치이다. ㅎㅎ
그때나 지금이나 좋아하는 음악을 종종 들으면서 그래도 내 생활에 음악이 늘 있었구나하 하는 생각이 드니 약간은 감성이 있는 싸가지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